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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나눔

책도서(8) - 홀가분 연습 - 2017.09.18(월)


정독도서관에서 발견된 이 책. 마음 한켠에 답답한 것이 있는 것인지 딱 보자마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이 책 속에 내가 궁금해하고 잘 풀리지 않은 문제를 해결해 줄것만 같았다. 


결과적으로 책을 읽고 난 후 나 자신의 마음 한켠에 답답함을 해결해주었고 정말 홀가분한 마음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나 역시 철학적인 고전과 경전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왠지 너무 도 닦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하다. 해탈이라는 말도 자주 쓰는 나 자신. 아마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 일반적인 시각에서 해결되지 않으니 정말 근본적인 인간 본연의 가치란 무엇인지? 찾다보니 고전과 철학을 찾게 된 것 같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이 이런 고전과 철학, 경전이나 자신을 깨닫게 해주고 바로 잡아주는 메시지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책의 경우 고전 철학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부처, 기독교 경전까지 철학부터 신앙의 말씀까지 지혜와 교훈을 얻게 해주는 책이다. 
나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해주고 이제서야 참된 도리가 무엇인지 잠시나마 알게 해주는 정말 마음 가벼워지게 해주는 책이다.

첫째, 인류의 스승들이 한결같이 주장한 것이 있다. 인간이 지녀야할 가장 근본이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 그것은 자애, 사랑, 자비이다.

성현들의 성현인 노자가 지니고 보존하는 세가지 보물인 삼보중 첫째가 자애다. 바로 사랑이다.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으로 인간이 행할 최선의 것으로 자애로움을 제시했다. 부저도 자비를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았고, 예수도 믿음과 소망 위에 사랑이 존재한다고 예수의 모든 행적은 철저히 사랑에 기분을 두었다. 노자는 "자애롭기 때문에 능히 용감할 수 있다"라고 했고, 예수의 행위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엇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가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을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고, 이제 막 사랑을 맹세한 연인은 자신의 연인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위험 앞에서도 물러지 않는다.

둘째, 심재란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것. 받아들이는 동시에 곧바로 비우는 작용을 쉼 없이 한다. 좌망이란 잊음이다. 앉아서 모든 것을 잊는다. 자신의 손발이나 육체를 잊고, 눈과 귀의 작용을 멈추고, 형체가 지각을 벗어나고 인의(仁義)와 예악(禮樂)마저도 잊는 것. 잊음으로서 고요함에 다다르는 방법이다.

"비우면 받아들일 수 있고 잊으면 고요해진다. 깨달음은 복잡하거나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셋째, 생멸의 법칙. 모든 것은 나타났다 사라진다. 

인간은 죽는다. 물질은 부서진다. 비물질은 사라진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생겼다가 없어진다. 살다가 죽는다.
그러니 눈 앞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든 그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모든 것은 곧 우리 눈앞에서 소멸할 것이다.
잡념도 생멸이다. 어느 순간 잡념이 일어났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잔다. 사랑도 생멸이고, 미움도 생멸이고, 기쁨, 슬픔, 축복,
저주, 행복, 불행, 좌파도 생멸이고, 우파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 피어도 곧 지고 만다. <도덕경>에는 
회오리 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못하고, 소나기는 하루 종일 내리지 못한다고 했다. 자연이 그럴진대 인간의 모든 것이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다. 생멸의 법칙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집착한다고 해서 얼마나 오래 갈것인가? 아무리
오래 갈 것이라고 여겨도 곧 그치고 만다. 사라지고 만다. 집착이 잦아들면 우리의 삶도 한층 가벼워질 것이다.

넷째, 서두리지 말고 쉬지말고. "수십년을 한꺼번에, 단번에 살아낼수는 없다. 꾸준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도격경>에는 사람이 오래 서 있으려면 발돋움을 해서는 안된다. 발돋움을 해서는 채 몇 분도 버티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오래 걸어가려면 가랑이를 벌리고 걸어서는 안된다. 가랑이를 벌리고는 채 몇 리도 가지 못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어떤 일을 하든지 발돋움을 하고 가랑이를 벌리려고 한다. 오래 서 있으려면, 멀리 가려면 무위의 마음과 
자세를 취해야하는 데도 대단하게 보이려고 하는 탐욕과 무엇이든 빨리 하려고 하는 욕망 때문에 익지힘을 쓰는 것이다. 
그 모습이 발돋움한 모습이고 가랑이를 벌린 모습이다. 자연스럽게 해도 오래 할까 말까 하는데 우리는 그 반대로 일을 하는 것이다.
삶은 장편소설이다. 조급하면 일을 그르치고, 너무 오래 쉬면 감을 잃고, 무리하면 쉽게 실증이 난다. 그러나 그저 하는 듯 마는 듯
매일 조금씩 하는 일은 평생을 할 수 있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나중은 창대해지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억지 마음, 억지힘을 내지 않는것이다.

다섯째, 덜고 또 덜어내면. "검소하기 때문에 능히 넓어질 수 있다"

내용물이 가득 찬 그릇에는 새로운 음식이 들어갈 수 없고 머릿속이 잡념으로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 수 없다. 그래서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변화하고 싶으면 기존의 것을 먼저 비워야 한다. 그래야 다른 것이 들어 올 수 있다. 배가 부를 때는 어떤 맛있는 음식이 있더라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방안이 물건으로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가구를 들여 놓지 못한다. 나룻배가 맞부딪치면 서로 욕하고 싸우지만 사람이 타지 않은 빈 배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싸울 대상이 없다. 그저 묵묵히 그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검소하기 때문이 능히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은 한쪽을 비우면 다른 쪽은 채워진다는 것이다.  먼저 검소함을 실천하면 뒤따르는 것은 풍족함이다. 먼저 풍족함을 추구하면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부족함이다. 

여섯째, 타인의 시선을 거두고 자신에게 집중하라. 

나의 일을 하고 나의 공부를 하고 나의 삶을 살아가는데 그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는다면 나의 삶은 나의 삶이 아닌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대부분 타인에게 일의 잘못됨을 떠넘기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 때 그 사람이 조금만 나의 일을 도와 주었더라면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 그 사람이 나의 편을 들어주었더라면 나의 입지가 조금 더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타인에게 일의 원인을 떠넘기려는 성향은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자신감이 있고,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은 타인 때문에 일이 어떻게 되었다는 핑계를 대지 않는다. 자기를 먼저 바라보고 자기의 일에 집중한다. 타인의 어떤 행동과 말과 생각을 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타인의 것을 바라보면서 지적하고 그곳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올바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다. 타인의 것을 자신이 바꿀 수는 없지만 자신의 것을 자신이 바로 잡을 수 있다.